지리산(智異山).(벽소령 ~ 세석 ~ 대성골)
▲영신봉에서 바라다본 세석과 촛대봉
▲ 주능선에서 내려다본 작은세개골 방향
▲ 큰 세개골의 무명폭포
▶ 산행일시 : 2007년 07월 08일(일요일), 날씨 : 구름 많음
▶ 산 행 지 : 지리산(智異山) 벽소령 ~ 대성골
▶ 산 행 자 : 본인. ch후배님.(2명)
▶ 산행코스 : 의신⇒삼정⇒벽소령대피소⇒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 음양수샘⇒
대성골갈림길삼거리⇒대성동마을⇒의신(원점회귀산행)
▶ 산행시간 07:40 ~ 16:10(약8시간30분) ⇒사진촬영 하느라 널널산행
○ 의신 ⇒ 벽소령(6.8km) - 2시간20분
○ 벽소령 ⇒ 세 석(6.3km) - 2시간30분
○ 세 석 ⇒ 의 신(9.1km) - 3시간40분(중식30분)
▶ 산행거리 : 약 23 km
◈ 산행 이야기
백두대간의 끝, 푸른 남해가 바라보이는 곳에 마무리하듯 높고 우람하게 지리산을 세웠으니 대간끝 영산을 포진한 그 오묘한 구도에 경건히 머리 숙일 뿐이다.
지리산은 우선 그 덩치로 찾는 사람들을 단근질 하듯 지리의 품에다 단번에 감싸버리고 그 장대함에 취하게 만들고 생태, 기후, 환경의 다양함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자연의 품이 넓고 크며 때로는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친화적이다가 순응을 거부하는 사람들 에게는 때로는 혹독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지리산만큼 뛰어난 자연의 스승은 없다고 할 것이다.
그 엄청난 흡인력과 치유력, 교육력은 매년 수백만명을 품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불만을 해소해주고 그들의 오죽
잖은 신경을 쓰다듬어 주어 잃었던 용기를 되찾게 하고 그들에게 속세의 지혜의 부질 없음을 가르쳐주고도 여유가
있어 언제나 유장하다(퍼옴).
오늘은 의신마을에서 삼정을 거쳐 백소령대피소를 올라 지리주능선을 타고 덕평봉 →칠선봉 → 영신봉 →세석대피소를 경유하여 빨치산 몰살의 비운을 간직한 대성골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잡았다.
▲ 지리산 화전민 역사관
사실 의신마을에서 선비샘으로 바로 오르고도 싶지만 비 법정 탐방로이고 장마기간이라
등로에 물기도 많고 수풀이 우거져 길도 희미할 것 같아 대로를 따라 가기로 한다
의신마을 지리산 화전민 역사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삼정마을을 향하여 간다 .
부산에서 오셨다는 부부산행팀이 우리팀 하고 같이 출발하였으나 동행이 되지를 않고...
▲ 빗점골에서 합류하여 형성된 삼정마을앞 계곡
▲ 아침 안개속의 계곡에는 신비로움이 감돌고 ...
마을쪽에는 안개가 없으나 산위로 고도를 높일수록 안개구름이 자욱하다.
삼정마을 민박집에는 휴일을 맞아 찿아온 손님들로 시끌벅적하다
민박집 담장아래로 난 등산로를 따라 잡초가 무성한 밭길을 가로질러 산 능선을 따라 오른다
된 비알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벽소령 작전도로를 만나는 지점까지 20여분동안 땀을 비오듯 쏱으며 오른다
바람이 불지 않아 한정없이 무더운 날씨다.
▲ 벽소령 작전도로에 올라서서 휴식을 한다
이제 구름속으로 햇볕도 간간히 비친다 . 지금부터 벽소령 아래 계곡까지 수월하게 작전도로를 따라간다
▲ 벽소령에서 내려오는 지류와 우측에서 내려오는 지류가 합수지는 지점
▲ 벽소령 대피소
벽소령에서 내려오는 지류와 우측에서 내려오는 지류가 합쳐지는 지점에서 계곡을 따라 벽소령 까지 가파른 계곡
등로를 치고오르면 벽소령 대피소다.
의신에서 벽소령 까지 2시간 20여분만에 도착 하였다 꽤 빨리 올라온 셈이다
오늘 휴일 인되도 젊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등산객 댓명 뿐이고 매우 한산하다.
안개구름이 몰려온다 준비해간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휴식을 한뒤 세석으로 향한다
지리산 종주를 하여보면 새벽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이곳에 오면 진이 좀 빠지고 세석까지
가는 구간이 나의 경험에 의하면 제일 힘든 구간 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안개구름이 몰려오고
▲ 선비샘
대피소에서 음정으로 내려가는 곳까지 옛 작전 도로를 따르고 다시 능선을 이어가다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선비샘이 나온다
선비샘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이어 세석으로 떨어진다.
▲ 서울대 정문이 연상이 되고 ....
▲ 칠선봉 가면서 본 걸어온 능선길 덕평봉 방향
▲ 칠선봉
▲ 칠선봉 주변
▲ 칠선봉 주변
▲ 작은세개골 방향
▲ 전망바위에서 영신봉 방향
▲ 영신봉 가는 오름 계단길
▲ 계단 오르면서 내려다본 마천 백무동쪽
▲ 지리 주능선길
▲ 영신봉 북쪽사면
▲ 영신봉에서 바라본 촛대봉과 세석평전
▲ 영신봉 북쪽 사면의 능선
▲세석평전
세석에서 조금 내려가면 거림과 의신으로 가는 삼거레에서 우측 의신 방향으로 내려서고
10여분 뒤 음양수샘에서 중식을 한다 .
아래로는 세석의 들꽃
▲ 음양수샘
평지에 돌출된 바위 밑에서 두 가닥으 샘물이 하나로 모인다 햇빛이 들고 안 들고 하는 것으로 양수와
음수로 나뉜다.
세석에서 조금 내려가면 거림과 의신으로 가는 삼거레에서 우측 의신 방향으로 내려서고 10여분 뒤
음양수샘에서 중식을 한다.
30여분의 중식을 마치고 남부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청학동과 대성골 갈림길을 만나고 역시 우측 의신 방향으로
내려서면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 남부능선길 내려가다 어느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남부능선길 안개로 조망이 어렵다.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거림계곡 안개가 자욱하고 ...
▲ 대성골 내려서면서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남부능선과 뻗어내린 산그리매
남부능선 길에서 50여미터 내려서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인데 오늘 안개로 조금 아쉬우나 좌측으로 삼신봉 까지
이어 지는 남부능선과 아래로 대성골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칠선봉 영신봉 에서
뻗어내린 산그리매가 아련하다 . 잠시 조망을 즐기고 큰 세개골로 내려선다
▲ 아래 암릉을 줌으로 ..
▲ 전망바위에서 본 큰세개골과 대성골 방향
▲ 주능선에서 뻗어내린 산그리매
▲ 큰세개골의 무명폭포
▲ 깊고 깊은 대성골의 시작
▲ 대성골의 무명폭포
▲ 대성골의 무명폭포
▲ 지리산에서 가장 참혹했던 빨치산 몰살의 비운을 간직한 대성골
1952년 1월 17일은 지리산 온 골짜기를 가득 메워버릴 것처럼 함박눈이 내렸다.
그날 날이 저물면서 빗점골, 거림골, 신흥 등지의 방면에서 빨치산이 대성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다음날 새벽쯤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눈 덮힌 대성골 전체가 빨치산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순덕(정순덕)이 가늠하기에도 1만 명의 대병력이 대성골에 빽빽히 들어찬 것이다. ......
빗점골 의신부락 뒤쪽에서 토벌대들이 언제 야포를 끌어다 놓았는지 금세 대성골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스무 발 이상이 동시에 작렬했다. 귀청이 찢어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달아나는 것 같았다. .......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토벌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훤히 내려다보며 토끼몰이를
하듯 포위망을 좁히며 포격을 퍼부어 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동작이 빠른 지휘관이나 전사들은 토벌대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포위망을 뚫고 나갔지만 대다수는 독 안에 든 쥐
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어 자빠졌다. 발에 걸리는 것이 시체들이었다. 하루종일 퍼부어대던 포격도 총격도 해가
지면서 추춤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 하늘에서부터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 ......
머리 위에 떨어지는 시커먼 물체는 휘발유가 가득 차 있는 '드럼통'이었다. 비행기 편대는 네 번 아니 다섯 번 쯤인가 대성골 골짜기에 마개가 빠져 있는 드럼통을 삐라처럼 뿌리고 다녔다.
그러다 마지막 편대에서는 주먹만한 것을 골짜기 곳곳에 날려보냈다. 바로 소이탄(燒夷彈)이었다. 그 순간부터
하얀 눈으로 덮혀 있던 대성골은 시뻘건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정충제 기록, [실록 정순덕], 상권, 272~276쪽 발췌/인용)
▲ 대성동 마을
대성골은 우리민족끼리 사상과 이념의 갈등으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던 빨치산 소탕의 최후의비운을
간직한 곳 . 동족상잔(同族相殘)의아픔을 간직한곳.
세월의 흐름으로 저 멀리 역사속으로 아픈 기억은 사라져 가고 가끔 등산로에서 단피나 실탄을 발견 할때면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의 장면이기록등에 의하여 상상이 되어진다. 가슴이 싸아하게 아파 오는 느낌을 ....
오늘도 등로에서 실탄의 쬬빗한 남덩어리를 한개 발견 하였다 . 땅 밑에는 아직도 전쟁의 잔해가 많을듯 ..
오늘 산행은 거리상으로 제법 많은 길을 걸었고, 지리 주 능선도 걸었다. 산 아래 지역은 안개로 시야가
어두 웠지만 상층 부에는 기온이 낮아 안개구름이 걷힌 틈을 이용하여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조망을 즐길수
있었다 . 특히나 민족의 아픈 상처를 간직한 대성골을 다녀옴으로써 잊혀저 가는 역사의 한면을 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산행 이었다
2007년07월 08일
지리산(벽소령 ~세석~대성골) 산행을 마치고 ... 이 향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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